2023. 5. 31. 18:37ㆍby 글생도K - People, Books & Life
나이를 먹으면 뇌는 보수화된다
가능하다면 자신과 다른 외집단 사람들의 생각도 단순히 ‘외집단이니까’라며 배제하지 말고 상호 존중하며 서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뇌과학적으로 어려운 문제다. 상대가 누구든 공감하며 행동하고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인정하는 것은 매우 고차원적인 기능으로, 전두엽의 '안와전두피질'이라는 영역에서 관장한다.
이곳은 25~30세 정도가 되어야 성숙하며, 완전히 발달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자극(교육)이 필요하다. 또 알코올 섭취나 수면 부족 등과 같은 이유로 기능이 쉽게 저하된다. 게다가 그 기능이 완성되기까지는 인생의 약 3분의 1 정도 되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 반해 쇠퇴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최근 뉴스 등에 자주 언급되는 진상 노인이 그 전형적인 예다. 그들이 자신의 도덕관에 입각해 상대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전두엽의 '배외측전두전야'가 퇴보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통 나이가 들면 사고가 보수화된다고 하는데, 그것과 같은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뇌가 노화되어서 보수화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화’는 정치사상적인 보수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본래 가진 사상의 경향이 좀 더 둔화되고 그 밖의 의견은 자동적으로 기각되는 확증 편향이 작동해 사고가 더욱 경직됨을 의미한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옛날엔 좋았지’는 뇌가 늙었다는 신호
만약 당신이 ‘옛날엔 참 좋았지’라는 생각에 자주 잠긴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를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행위는 뇌의 전두전야가 노화하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르고, '정의 중독'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과거의 기억을 멋대로 재구성한다. 괴로웠던 경험이나 일상적인 요소는 싹 지우고 좋은 것만 골라 마음대로 조합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은 상당히 미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가끔 “예전엔 참 좋았는데, 예전 정치인들은 다들 터프하고 카리스마가 있으면서 근성도 있고 리더십이 넘쳤어. 그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다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어쩌면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 보면, 옛날 정치인들이 현역이었을 때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인정할 만한 일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당시 대중매체는 동시대 정치인의 문제점을 계속 찔러댔고 선거법도 당연히 지금과 달랐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개혁한 결과 지금에 이른 것인데, 어째서인지 안 좋았던 점들은 잊고 만다. 그러면서 그저 ‘그때는 좋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까?
인간이 종종 이러한 생각에 빠지는 이유는 뇌가 늙었기 때문이다. 노화로 인해 전두전야의 기능이 약해지면 아무래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진다.
이러한 사고 패턴은 다양한 장면에서 엿보인다. 옛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나 영상만 즐기게 되거나, 옛날 이야기 말고는 재미가 없다거나, 늘 비슷한 음식만 먹는다거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보다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하는 것 등등. 물론 그것들이 전부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러한 경향은 전두전야의 퇴보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신호다.
그리고 이때도 기억은 미화된다. 옛 연인을 그리워한들 지금은 외모도 성격도 다 변했을 텐데 기억 속에서는 당시 모습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자기가 잘못해서 헤어졌으면서 기억 속에서는 사이좋고 달콤했던 시간만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자기가 한 짓은 잊어버려도 당한 일은 잊지 않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러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늙지 않는 뇌와 늙는 뇌의 차이
타인을 용서하지 못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은 ‘용서’의 기반인 전두전야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위축되어 버린다는 사실에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사실이다. 뇌세포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식 죽어 간다. 고령이 되어도 전두전야의 신경 신생은 일어나지만, 새로 만들어진 신경세포는 수초화되지 않거나 신경 회로에 들어가지 못한 채 소멸되어 버린다.
다만 여기에도 개인차가 존재한다. 뇌도 어디까지나 몸의 일부이므로, 그 부위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기능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무리하게 식단을 제한하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의 신경 세포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이든 젊은 나이에 형성된 전두전야의 기능을 언제까지고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면서 사용할 수는 없다. 30대와 70대의 뇌 기능은 차이가 꽤 크다. 똑같은 처리를 하더라도 담당 신경 세포를 구성하는 물질이 소모품처럼 갈아 끼워지면서 전체적으로 감소되어 간다. 컨디션이 최상일 때의 뇌 기능을 노력으로 몇십 년이나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편, ‘저 사람은 나이를 먹은 뒤 발언에 설득력이 더 생겼다’는 식의 말을 듣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 뇌가 늙기 마련인데, 상대적으로 뇌가 잘 늙지 않는 사람이 있고 개중에는 젊은 때보다 더 뛰어난 기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음을 보여준다.
뇌를 늙지 않게 단련하는 뇌과학적 방법과 습관은 존재한다.
늙지 않는 뇌를 만드는 생활습관
전두전야는 분석적 사고와 객관적 사고를 담당하는 곳이다. 이곳이 제대로 기능하면, 눈앞의 이해득실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사회경제적 지위도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만약 자신이 충동을 억누르고 있거나 어쩔 수 없이 주변 상황에 맞추고 있는 상태란 생각이 든다면, 일단 전두전야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전두전야가 퇴보하지 않은 사람은 평소에 ‘이게 상식이지’ ‘당연히 그게 맞지’ 등과 같은 고정화된 통념과 상식,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늘 사실과 데이터를 근거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사고한다.
전두전야를 단련하려면 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바쁘게 살기보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부터는 생활 속에서 어떠한 점을 주의하면 좋을지 살펴보자.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
- 평소와 다른 경로로 가기
- ‘절대 읽지 않을 책’이나 ‘관심 없는 책’ 고르기
- 단골 메뉴와 단골 가게 바꿔 보기
- 인터넷에서 지적 편식을 하지 않는다.
일부러 관심 없는 키워드를 검색해 보거나 평소에는 보지 않는 뉴스 기사를 적극적으로 열람해 본다. 평소의 자신과 전혀 다른 페르소나를 설정해 정보를 검색하는 것도 좋다. 자신의 속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의 가치관, 고민, 관심사 등을 검색해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보를 접해 본다. 그렇게 하면 지적 편식도 예방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과 지식을 접하면서 유익한 사고 패턴을 학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은 결국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지적 편식을 악화시킬지 예방을 위해 사용할지는 사용자의 의식이 어떠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타인을 비난하며 쾌감을 얻는 뇌
당신은 어떨 때 타인을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가?
연인이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
상사에게 갑질과 성희롱을 당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이때 생기는 ‘용서할 수 없는’ 감정은 그들이 겪은 피해에 대한 분노이므로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청순한 모범생 이미지로 잘나가던 여성 탤런트가 불륜을 저질렀다
식당 종업원이 문제될 만한 영상을 장난으로 SNS에 올렸다
대기업이 광고에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물론 불륜은 법적으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식당 영업을 방해할 만한 영상을 올리는 행위는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 또 광고에서 특정 사람들을 차별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당신이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고 당사자와 관계도 없는데, 강한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 생긴다면? 일면식도 없는 상대에게 공격적인 말을 퍼붓고 완전히 짓밟아야 풀린다면?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범법자나 배신자 등 누가 봐도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을 찾아 벌하는 데 쾌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다.
타인에게 ‘정의의 철퇴’를 가하면 뇌의 쾌락중추가 자극을 받아 쾌락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 쾌락에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하며, 항상 벌할 대상을 찾아 헤매고 타인을 절대 용서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상태를 정의에 취해 버린 중독 상태, 이른바 ‘정의 중독’이라 부른다. 인지 구조가 의존증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유명인의 불륜 스캔들이 보도될 때면 “어떻게 저런 짓을! 저건 절대 용서하면 안 돼”라며 비난을 퍼붓고, 누군가의 문제 영상이 올라오면 그가 일반인이더라도 그는 물론 가족들의 신상 정보까지 공개해 버린다. 또 기업의 광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당 상품과 관계없는 부분까지도 죄다 들추어내 따지고 든다.
‘저런 짓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호되게 벌을 받아야 해.’
‘난 옳고 쟤는 틀렸으니까 심한 말을 퍼부어도 괜찮아.’
이런 사고 패턴은 한번 생기면 멈출 수 없기 때문에 무섭다. 본래 갖고 있던 냉정함, 자제력, 배려심, 공감력 등은 모두 사라지고, 평소와 너무도 다른 공격적인 인격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그 대상이 불륜 스캔들 같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고 아무리 공격해도 자신의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정의를 외칠 절호의 기회다.
누구나 정의 중독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악의적인 댓글이 쇄도하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우리의 뇌 구조상 정의 중독에 빠질 가능성은 누구나 있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 역시 조심해야 한다.
또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저의 중독자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별 생각 없이 SNS에 올린 사진이 생판 모르는 사람의 심기를 건드려 ‘경솔하다’ ‘잘못했다’ 등의 비난을 받는 경우가 그 전형적인 예다.
'정의 중독' 상태에 빠지면 나와 다른 것을 모두 악(惡)으로 간주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이면 ‘몰상식한 인간’이라 규정짓고 어떻게 공격할지, 상대에게 최대한 큰 타격을 주기 위해 어떤 말을 할지 고심하게 된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떠나 양측 모두 자신이 정의라고 확신해 공격하기 시작하면 해결점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심지어 참여자들이 그 상황 자체를 하나의 이벤트로 여겨 적극적으로 즐기 듯 보일 때도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해결할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가만히 지켜보면, 얼마나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상대를 깎아 내리는지 그 기술을 겨루는 시합을 보는 것만 같다.
이는 ‘매우 심각한’ 정의 중독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새로운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정의에 취해 상대를 일방적으로 깎아내리는 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정의 중독=나카노 노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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