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 플라톤의 제자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 -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2023. 2. 19. 21:39by 글생도K - People, Books & Life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中庸) 

중용은 이성에  의해 감정을 억제함으로써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의지를 습관화한 덕을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하나의 행위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가 전 생활의 모든 행동에서 중용을 지키지 않는 한, 그 사람을 유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봄이 되는 것이 아니며, 하루의 실천만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표현하였다.

전쟁과 평화 지혜의 여신 아테나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누구인가
스승 플라톤과의 관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함께 손꼽히는 고대 그리스의 대철학자이다. 그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했던가는 중세에 있어서 철학자 하면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키고, 철학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녀와 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스타기라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궁중 의사였다. 그는 18세쯤 아테네에 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고, 20년 가까이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학원과 아카데미에 머물렀다.

플라톤은 영원하고 이상적인 형태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지식이 자연 세계와 경험적 관찰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철학적 이견에도 불구하고, 스승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카데미의 지성'이라 부르며 칭찬했으며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평생 동안 플라톤을 존경하며 그의 작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였다. 철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평생에 걸쳐 서신을 주고받으며 지적 담론을 이어갔다. 그들은 앞으로 수세기 동안 서양 철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알렉산드로스를 제자로 맞이하다

플라톤 사후, 그는 아카데이아의 원장직을 포기하고 마케도니아로 돌아온다. 기원전 343년 열세 살이던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가 되어 몇 해를 지냈다. 그의 지도가 장래의 이 위대한 영웅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근대 독일의 대철학자인 헤겔은 이것을 가리켜 철학의 실제적 가치를 보인 좋은 예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영국의 학자이며 문명비평가인 버트란드 러셀은 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러셀에 의하면, 알레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현학적인 재미없는 노인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소년을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고집 센 게으른 아이로 생각했을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러셀의 이와 같은 관찰도 이유 없는 것이 아니며, 그만큼 이 두 인간형은 이질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은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과 동시에 그는 조용하던 학구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가 창설한 학원은 왕의 보호하에 있었던 것인데, 왕이 세상을 떠나자 반대당의 공격과 모함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지에 몰리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죄명은 신앙을 무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형벌을 피하기 위해 아테네를 떠나 작은 섬나라 칼규로 탈출했다가 그곳에서 병으로 죽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과 업적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상의 업적은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미쳤으며, 그 밖에 모든 학문적인 분야를 뒤덮고 있다. 그의 주요 저작으로는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논리학>, <자연학>, <시학> 등을 손꼽을 수 있는데, 이들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확고한 위치를 유지했다. 특히 삼단논법, 귀납법, 연역법은 널리 알려진 논리의 규범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한 말은 그의 <정치학> 속에 보이는 말이다.

정치적 기둥으로 받들어지는 사회에서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는 면에서 파악한 그의 안목은 확실히 명석하고 탁월했다. 그의 정치 학설에 따르면, 국가는 최고 종류의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선(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국가는 시간적으로 가정보다 나중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본질상 가정이나 개인보다 우선적인 위치에 선다. '모든 요소가 충분히 성숙하고 발달한 단계에 이른 것이 본성'이므로, 인간 사회가 충분히 발달된 형태가 바로 국가이기 때문이다. 

법률이 없으면 인간은 죄악의 동물이나, 법률은 국가를 전제로 하여 비로소 존재한다. 그러나 국가라는 것은 단지 상업상의 거래와 범죄 방지를 위한 기관은 아니다. '국가의 목적은 착한 생활이다', '정치적인 사회란, 단지 자기 당끼리의 도당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고귀한 행동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하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이념은 다분히 플라톤의 국가론을 이어받은 것이며, 관념적인 이상주의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수천 년 전, 고대의 철학자들이 이 같이 국가의 이상을 높이 걸었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국가란 그 고귀한 목표를 수행할 능력이 역부족이었다.

"정치는 현대의 숙명이다."라고 나폴레옹은 말했다.

파란만장한 정치적 파동 위를 오르내리던 시대의 정복자 나폴레옹의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시대에서 2천 년이나 지난 후에 나온 말이다. 그럼에도 나폴레옹은 정치가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국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점을 지적한 동시에, 그 정치라는 것이 또한 얼마나 인간의 의지와는 한참 어긋난 길을 갈 수도 있다는 것을 개탄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