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4. 21:46ㆍby 글생도K - People, Books & Life
어떤 상황에도 살아가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슬픔이 온몸을 감싸고 순간순간 죽음이 떠오르며 삶 자체가 허망하게 느껴지더라도. 살자. 철학과 사상이 나를 지탱해 줄지니.
- 글생도K -
“나의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이 순간 다음이 여전히 궁금하기 때문이다.”
-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1844년 프로이센 뢰켄에서 태어났다. 니체가 5살 때 사망한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는 루터교 목사였다. 니체는 포르타의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본 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젊은 시절 니체는 워낙 뛰어나서 겨우 24살 때 바젤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위생병으로 복무한 후 <비극의 탄생 The Birth of Tragedy>을 집필했다.
니체는 끈질긴 병마에 시달려 교수직에서 물러나 유럽 곳곳의 셋방을 전전하며 넉넉지 못한 연금으로 생활해야 했다. 걸국 1889년에 매독이나 우울증에 기인한 신경쇠약에 걸려 어머니와 누이의 간호를 받다가 1900년에 세상을 떠났다.
선악의 저편
그는 <선악의 저편 Beyond Good and Evil>(1886)에서 “인간에게는 창의적이고 강력해지려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욕구가 있는데, 도덕은 그것을 억압하고 왜곡하기만 한다.” 라고 했다.
니체는 겨우 24세에 철학 교수가 되는 등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으나, 지병과 지독히 독자적인 정신 탓에 주류 학계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객관적인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부정했기 때문에 특출하게 개인적인 광기 어린 문체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가 <선악의 저편>에서 거론한 일부 사람들이나 사건은 당대에나 해당될 뿐이지만, 그의 과학관과 종교관을 비롯한 니체의 전반적인 통찰은 오늘날에 볼 때도 매우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니체는 근본적인 진리 추구라는 전통적인 철학 목표를 거부함으로써 실존주의와 해체주의 철학자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기존 도덕과 민주주의의 이상, ‘인종 혼합’을 혐오한다는 이유로-반유대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불행히도 나치 이데올로기에 악용되기도 했다.
<선악의 저편>에서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집단 · 당파 · 민족 ·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이런 생각으로 사람들은 수많은 괴로운 밤을 견디어낸다.”
니체의 사랑
니체는 애정 문제에 운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을 경멸했지만, “복수하거나 사랑할 때 여성은 남성보다 야만적이다.”라는 남녀 관계에 관한 흥미로운 관찰도 보인다.
그러면서도 “사랑으로 행해지는 것은 항상 선악의 저편에서 일어난다.”라고도 했다.
사랑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그저 사랑일 뿐이다. 이것이 사랑의 힘이다. 상극(相剋)을 초월하려 했던 니체는 빛과 어둠, 선과 악이 모두 인간 정신에서 만들어낸 것이라 여겼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그냥 ‘존재할’ 뿐 어떤 꼬리표도 불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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